국민담론


[2018-01-25] 최영기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의 과속 인상"

2018-01-25 21:43:29조회32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의 과속 인상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

 

1. 준비 안 된 최저임금의 과속 인상

 

문재인 정부는 태생적으로 준비된 정부는 아니다. 초유의 대통령 탄핵사태로 선거가 7개월이나 앞당겨 치러진데다 다른 때와 달리 2개월여의 인수위원회 준비 기간도 없이 선거 다음날 바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취임 초기 정책들은 설익은 과일처럼 거칠고 배탈이 날 위험도 높았지만 문대통령은 취임 일주일 만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고 100일도 되기 전에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다. 너무나 큰 정책을 너무 쉽게 결정하는 탓에 공약 이행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의도만이 아니라 다가오는 지방선거까지 겨냥한 캠페인성 정책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상황은 정부의 낙관적 기대와 달리 전개되고 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급격하게 인상된 최저임금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경비와 청소 노동자, 편의점과 주유소의 청년 알바들이 일자리를 위협받거나 근무시간 단축을 요구받고 있다. 음식점이나 배달 업체들은 가격을 올려 최저임금 부담을 소비자에 전가하고 영세 중소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잔업이나 주말 특근을 줄여 대응하고 있다. 요동치는 시장과 들끓는 여론에 밀려 청와대는 장하성 정책실장을 책임자로 하는 최저임금T/F를 설치하고 아파트와 대학을 돌며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완화하겠다며 마련한 3조원 정도의 고용안정 자금을 방패삼아 시장의 충격이 가라앉기를 바라고 있다. 주요 부처 장관들이 현장을 뛰어다니며 최저임금 지원제도 활용을 적극 홍보하고 다니는 진풍경도 연출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최저임금이 시행되기 전에 했어야 할 조치들이다. 시간 부족을 탓할 수도 없다. 최저임금이 결정된 작년 7월말 이후 5개월이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정부는 안이한 태도로 일관하며 취약근로자들이 겪게 될 고용압박이나 중소상공인들의 폐업 위험, 소비자 가격인상 등 전문가들의 우려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2. 시장의 반응과 고용 전망

 

다행히 금년 경제전망이 나쁘지 않아 최저임금 충격이 일부 언론이 예측하듯 고용대란으로 치닫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리고 사업주들도 비용 상승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근로시간을 줄이고 노동 강도를 높이는 등 인력운영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 할 것이다. 이는 당연한 시장의 반응이고 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상여금이나 숙식비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임금체계를 정비하는 것도 경영을 합리화하는 긍정적인 변화이다. 이를 최저임금을 줄이기 위한 사업주의 비양심적인 꼼수로 폄하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정부가 나서서 꼼수를 부리지 못하게 단속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방향 착오이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최저임금의 인상이 초기의 고용충격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향상과 근로자 소득증대의 선순환 사이클을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중장기적으로 청년이나 경력단절 여성 등 취업준비 중인 고급 인력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 점차 최저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사업체와 그렇지 못한 곳이 분리되며 생산성이 높고 경쟁력이 있는 사업장으로 인력이 쏠리면서 임금인상과 생산성 향상의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성장과 분배 개선이 병행할 수 있는 시나리오이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결과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이상적으로만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2016년만 하더라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13.6%에 달했다. 최근 5년간 평균인상률이 7% 남짓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에는 이 비율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25세 이하의 청년과 60대 이상 고령층, 업종으로는 농어업과 음식숙박업에서 최저임금 미만률이 치솟을 전망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위반 사업주를 엄벌하겠다며 단속을 강화하고 있지만 영세 사업장에 단속의 손길이 다 미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단속으로 이들의 지불능력을 높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이들에 필요한 조치는 단속에 의한 처벌이 아니라 전업과 전직을 위한 안전망의 제공이다. 긴급 생활안정 자금이나 교육훈련을 통한 취업 지원프로그램이 더 필요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만의 관심도 아니다.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최근 최저임금을 올려도 고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실증적인 연구나 이론적 설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점진적인 인상일 때나 해당되는 얘기이다. 2018년의 사례는 최저임금의 고용효과를 면밀히 따져볼 수 있는 흔치않은 사례이다. 청와대와 내각의 고위공직자들이 현장을 누비며 정책 홍보에 힘을 쓰는 것보다 더 긴급한 정부의 조치는 보다 실무적인 현장 모니터링 팀을 투입하여 영세사업장의 최저임금 적응실태를 파악하고 지원하는 한편 전문가 집단으로 하여금 최저임금의 고용 영향분석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결과들은 6월부터 본격화할 2019년 최저임금 심의의 귀중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3.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소득주도 성장에 성공할까?

 

당면한 최대 과제는 2019년도 최저임금을 어떻게 할 것이냐이다. 올해 16.4% 인상의 충격은 어떻게든 수습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목표로 올해에도 15% 이상의 인상률을 고집한다면 우리 사회는 큰 갈등에 휩싸일 것이며 노동시장에도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야기할 것이다. 인상률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과거에도 16.4%보다 높은 인상률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정을 잘 모르는 얘기이다. 수치로만 보면 1990년에 18.8% 인상을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당시 경제성장률이 9.8%였고 물가상승률이 8.6%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작년 성장률은 2.7% 남짓에 물가는 2%에도 미치지 못했다. 2000년에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16.6%였지만 성장률이 8.9%였고 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1997~1999년 중에는 연평균 인상률이 4.5%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2019년 최저임금 심의에서는 왜 2020년까지 1만원이어야 하고 우리 경제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 전문가적인 검토와 보다 충실한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합의가 모아진다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의 사회적 분담 방안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당초 최저임금 1만원은 2014년경 알바노조가 들고 나온 노동운동 슬로건에 불과했다. 전문가적인 토론이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도 없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정책 수단으로 이를 채택하면서부터 많은 무리와 왜곡이 따르게 되었다. 정부는 우선 최저임금을 소득주도 성장 정책과 분리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많은 영세사업주들의 소득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자칫 중하위 소득계층 간의 제로섬 게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소득주도 성장의 적실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태에서 최저임금 1만원 정책을 이를 위한 핵심정책으로 밀어붙이면서 최저임금은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비화되었다. 정치적 공방으로 합리적인 토론과 냉철한 경제적 판단이 어려워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굳이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밀고 가려면 정부는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우선 최저임금 인상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영세 중소상공인들의 소득향상을 위한 중장기 계획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지금 사후 약방문으로 들고 나온 임대료 인하나 하청단가(또는 프랜차이즈 가맹요금) 조정 정책은 실효성도 낮고 문제의 본질이 아닐 수 있다. 이러한 처방은 모두 저임금의 책임을 해당 사업주 아니면 대기업에 돌리는 방식이다. 그러나 저임금의 근본 원인은 그 사업장의 낮은 생산성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인 접근이다. 생계형 자영업의 무한경쟁 실태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니면 공장을 제대로 굴릴 수도 없는 중소제조업의 실태를 개선할 산업구조개선 대책도 없이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소득주도 성장을 이루겠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최저임금 사업장들에 대한 지불능력조사를 실시하고 2018년도 최저임금 인상의 고용효과 등을 면밀히 분석하여 2019년 최저임금 결정이 또 다시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는 근로장려세제(EITC) 등 다른 빈곤 대책과의 연계 방안에 대하여 명확한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구조에서 최저임금 정책과 EITC 제도를 연계하여 운용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점과 두 제도의 취지도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면 논의를 분리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을 조기에 분명히 밝히는 것이 정책적 혼선을 피하는 길이다. 다만 국회에서도 결의했듯이 정부가 재정으로 임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장기간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 사회보험료 지원이나 영세 사업장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적 지원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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